대도시의 사랑법에서 흥수는 불문과 MT에서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첫 문장을 읊는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슬퍼하지 않고, 죽음을 평범하게 받아들인다. 그의 무미건조한 태도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그리고 태양빛 때문에 아랍인을 죽인 뫼르소는 기소되지만, 정작 재판에서는 그의 살인 행위보다 장례식에서 보인 냉소적인 태도가 문제로 지적된다.
사회는 흑백논리로 움직이며, 편집증적인 태도로 다름을 거부한다. 개개인은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의 범주 안에서 행동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재희처럼 아웃사이더가 되어 사회적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다. 정상성 밖에 있는 사람은 자유로운 연애를 하거나 동성애를 하더라도 쉽게 비난받고 배제된다. 이런 상황에서 흥수도 사회의 시선과 규범에 의해 고립감을 느끼며, 자신을 혐오하는 상태에 이른다.
만약 흥수가 불문과가 아닌 독문과를 선택했다면, 그의 인용문은 카프카의 『법 앞에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었다면, 영화는 보다 현실 참여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흥수와 이 영화는 사회적 헤게모니를 깨부수고자 하는 신세대의 저항을 상징한다. 기성세대와 공권력, 학교에서 확립된 질서에 도전하는 신세대의 모습을 그리면서, 이 영화는 마치 이태원 클라쓰처럼 사회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외친다.
우리 부모님조차 나와는 한 세대 차이지만 사고방식이 크게 다르다. 법과 학교에서 정해진 규범은 개인의 "나다움"을 억압하며 개성을 무시한다. 사회는 유기체처럼 구성원들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합은 단순한 산술적 총합이 아니며, 사회는 그것을 경제 논리로 단순화하고 통제하려 한다. 대도시에서 사람들은 비슷한 기성복을 입고, 정해진 성 역할에 따라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흥수는 자신의 색을 잃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흥수가 사회적 압박에 의해 스스로를 혐오한다는 것이다. 흥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사회의 정상성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지 말고, 더 자유롭고, 제멋대로, 능동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세상의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본연의 색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 영화와 흥수의 삶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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